지역경제와 환경,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까?
기후 위기와 자원 고갈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전 세계적으로 고조되면서, 소비의 패러다임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일회용 포장재 사용을 줄이고, 자원의 순환을 유도하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은 더 이상 일부 환경운동가들의 실험이 아니라, 일상적인 소비 행위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편, 국내에서는 전통시장의 침체와 골목상권의 쇠퇴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와 온라인 커머스의 급성장으로 인해 전통시장은 고객층이 감소하고, 젊은 세대의 발길이 끊기면서 구조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처럼 상반되어 보이는 두 이슈(환경과 지역경제)가 '소비 구조 재편'이라는 공통 지점을 통해 연결될 수 있다면 어떨까?
사실 제로 웨이스트 실천은 지역 소상공인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무포장 또는 최소포장 소비가 가능한 전통시장을 재조명하게 만든다. 대형마트 중심의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이 지배하는 소비 시스템에서 벗어나, 전통시장에서의 직거래, 다회용기 사용, 로컬푸드 소비가 제로 웨이스트와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전통시장이 가진 구조적 특성이 어떻게 제로 웨이스트와 맞닿아 있는지, 그리고 이를 활용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전통시장이 가진 '제로 웨이스트 잠재력'
전통시장은 구조적으로 포장재 사용이 적고, 상품의 공급망이 짧다는 특징이 있다. 시장 상인들은 대부분 중간 유통을 거치지 않고 직거래 또는 소량 도매로 상품을 확보하며, 소비자에게 제품을 낱개 또는 원하는 만큼 판매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구조는 불필요한 포장재와 물류를 최소화하는 데 유리하며, 소비자가 스스로 다회용기를 가져와 구입하는 문화와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예를 들어, 마트에서는 5개 단위로 포장된 사과를 구매해야 하지만, 전통시장에서는 낱개 구매가 가능하고, 구매자가 원하는 만큼만 담을 수 있어 과잉 소비를 줄이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또 생선, 고기, 건어물 등의 판매 방식도 포장보다 직접 담거나 신문지, 종이포장지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플라스틱 사용량 자체가 적다. 채소 역시 박스 단위나 벌크 형태로 진열되어 있어 소비자가 장바구니나 망태기로 구매하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이러한 특성은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시민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다회용기, 장바구니, 망사 주머니 등을 활용한 '포장 없는 장보기'가 가능한 곳은 마트보다 시장이며, 이는 자연스럽게 전통시장의 잠재력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된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환경을 위한 소비’에 대한 감수성이 확산되면서, 전통시장은 단순히 ‘싼 가격’이 아닌 ‘가치 있는 소비처’로 탈바꿈할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전통시장과 제로 웨이스트를 연계한 실천 사례들
최근 일부 지자체와 시민단체, 그리고 전통시장 상인회에서는 제로 웨이스트 실천을 전통시장 환경에 접목시키는 다양한 시도를 펼치고 있다. 예컨대 서울 성북구는 ‘제로 마켓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주민과 상인들이 함께 다회용기 사용 캠페인을 벌였으며, 시장 내 일부 점포는 고객이 용기를 가져오면 포인트 적립이나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또한 제주도에서는 ‘용기내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시장·마트·카페 등에서 다회용기 사용을 권장하고 인증하는 캠페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통시장 내 일부 상점은 ‘제로 포장존’으로 지정돼, 종이 포장지나 재사용 포장지로 대체하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대전의 한 청년상인 협동조합은 업사이클 재료를 이용해 장바구니나 보자기를 제작하고, 시장 방문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젊은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사례들은 제로 웨이스트가 단순히 일회성 환경 캠페인에 머무르지 않고, 전통시장의 매출 회복과 소비자 유입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SNS 인증이나 모바일 쿠폰 등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방식은 전통시장과의 거리감이 있던 MZ세대에게 시장의 재발견 기회를 제공한다. 즉,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면서 동시에 '재래시장에 간다는 것'이 일종의 가치소비가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제도화와 인프라 개선을 통한 구조적 연계 방안
전통시장을 제로 웨이스트 실천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 구조적 과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는 다회용기 사용 인프라 구축이다. 시장 내에는 다회용기 세척소, 보관소, 회수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가 용기를 들고 오지 않는 이상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공공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를 도입했지만, 전통시장에 특화된 운영 방식은 미흡한 실정이다. 시장 내에 공용 용기 대여소 및 세척소를 설치하고, 정기적으로 위생 점검을 시행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둘째는 상인 교육 및 인식 개선이다. 일부 상인은 여전히 ‘손님 불편’을 이유로 다회용기나 종이포장지 사용을 꺼린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인 대상의 제로 웨이스트 교육, 성공 사례 공유, 포장재 절감이 가져다주는 실질적 비용 절감 효과 등에 대한 정보 제공이 필수다.
셋째는 제로 웨이스트 인증 시장 제도 도입이다. 일정 비율 이상의 점포가 다회용기를 허용하거나 무포장 판매를 실천할 경우 ‘제로 마켓’으로 인증하고, 지방정부나 유통 플랫폼과 연계해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제도는 소비자 유입의 동기를 제공할 뿐 아니라, 시장 전체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
넷째는 지역 생산자와의 직거래 활성화다. 지역 농산물과 수산물을 직접 전통시장에 공급하면 유통 단계가 줄어들고 포장재 사용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로컬푸드 협동조합, 도농 직거래 플랫폼, 공공물류지원체계 등과의 연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전통시장은 제로 웨이스트 실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견인할 수 있는 핵심 플랫폼으로 거듭날 수 있다.
가치소비 시대, 전통시장의 재발견
제로 웨이스트는 더 이상 일부 의식 있는 소비자만의 실천이 아니다. 이는 기업, 지자체,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지속가능한 생태계의 핵심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전통시장은 자원 순환과 지역경제라는 두 축이 만나는 가장 적합한 공간이며, 무분별한 포장과 과잉 소비에서 벗어난 ‘가치소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전통시장이 지닌 잠재력을 ‘환경정책’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제로 웨이스트의 새로운 실천 무대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또한 소비자 역시 ‘가격’ 중심의 쇼핑이 아닌 ‘가치’ 중심의 소비를 통해 환경과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을 함께 실천해야 한다. 전통시장을 통한 제로 웨이스트 실천은 그 자체로 지역 순환경제의 모델이 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기제로 작동할 것이다. 지금은 단순히 전통시장을 ‘살리는 것’을 넘어,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소비의 장으로 재설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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