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시대, 도시는 제로 웨이스트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도시의 성장과 함께 발생하는 쓰레기 문제는 이제 단순한 생활 불편 수준을 넘어, 지역사회와 지구 환경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구조적 위기로 발전하고 있다. 대도시일수록 인구 밀집도와 소비 규모가 크기 때문에 하루에도 수천 톤의 생활폐기물이 발생하며, 그 대부분이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이 과정은 탄소 배출 증가, 해양 쓰레기 유입, 토양 및 수질 오염 등 다양한 2차 환경 문제를 유발하며, 결과적으로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 세계 도시들은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라는 새로운 정책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제로 웨이스트는 단순한 분리배출 강화나 재활용률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가 쓰레기를 ‘생산하지 않는 구조’로 재설계되도록 만들고, 자원순환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실천될 수 있도록 제도·문화·인프라를 전환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유럽연합의 '순환경제 패키지(Circular Economy Package)' 채택 이후, 도시 단위의 전환 정책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으며, 일본 가미카쓰정처럼 ‘제로 웨이스트 선언’을 하고 전체 행정·사회 구조를 바꿔나가는 사례도 존재한다.
한국에서도 점차 제로 웨이스트 도시로의 전환 흐름이 본격화되고 있다. 서울시, 수원시, 성남시, 전주시, 인천시 등 다양한 도시가 조례 제정, 시범사업 운영, 공공기관 실천, 민간 협약 확대 등을 통해 폐기물 발생 감축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단편적인 사업만으로는 도시 구조 전체를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보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이 글은 국내에서 실재하고 있는 정책과 제도, 그리고 도시별 실천 사례를 바탕으로, 제로 웨이스트 도시 전환을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다섯 가지 핵심 조건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제로 웨이스트 조례 및 계획 수립
도시의 환경정책은 결국 조례와 계획을 통해 구체화된다. 제로 웨이스트 도시로의 전환 역시 선언이나 시범사업을 넘어, 공식적인 법적·제도적 기반이 우선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서울시는 2019년 ‘자원순환 도시 서울 추진계획(2019~2022)’을 수립하며 2030년까지 생활폐기물 직매립 제로화를 목표로 설정했다. 이 계획은 소각이나 매립에 의존하던 기존의 폐기물 처리 정책에서 탈피하여, 감량, 재사용, 재활용, 에너지화 순으로 관리 우선순위를 재정립하였다.
또한 서울시는 2022년 ‘1회용품 없는 사회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공공기관·프랜차이즈·시장·학교 등 1회용품 다량 사용 장소에 대한 단계적 감축 로드맵을 제시했다.
수원시는 2021년 ‘지속가능한 자원순환도시 수원 추진전략’을 통해 지역 맞춤형 감량 전략을 설정하였고, 전주시 역시 2023년 ‘전주시 자원순환 기본 조례’를 제정하여 생활폐기물 발생억제, 재사용 활성화, 자원순환 촉진을 위한 행정체계를 법적으로 명문화하였다. 이러한 조례들은 단순한 방침이 아니라 예산 편성과 사업 추진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전환을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서울 성북구, 관악구, 은평구 등 일부 자치구는 자체적으로 ‘제로 웨이스트 도시 선언’ 및 세부 실행 계획을 수립하였으며, 서울시 조례 제정 움직임도 진행 중이다. 행정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처럼 명확한 조례와 실행 계획이 선행되어야 하며, 정책의 방향성과 법적 근거가 일관되게 구축될 때 도시의 자원순환 구조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둘째, 실천 기반 시민 참여 프로그램
제로 웨이스트 도시의 핵심은 ‘행동의 변화’다. 그리고 행동은 시민이 바뀔 때 가능하다.
단순한 계도나 홍보로는 한계가 있으며, 시민이 일상에서 환경 행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된 실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서울 은평구는 2021년부터 ‘다회용기 순환시스템 시범사업’을 시행했다. 이는 구청과 협약을 맺은 카페 20여 곳에서 다회용 컵을 대여·반납하는 시스템으로, 은평구는 전용 회수함 설치, 세척 시설 확보, 이용자 리워드 제공 등을 통해 주민의 실천을 유도했다. 그 결과 1년간 3만 6천 개 이상의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는 효과를 얻었고, 현재는 자치구 간 협력을 통한 시스템 확장도 논의되고 있다.
인천광역시는 2022년 ‘제로 웨이스트 시민참여단’을 운영하며 시민 주도형 쓰레기 감량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 참여단은 지역 상점과 연계해 무포장 소비 캠페인을 기획하고, 학교와 협력한 1회용품 없는 급식실 실천 등을 추진하며 정책의 수용성을 높이는 통로 역할을 했다.
또한 수원시의 ‘자원순환 실천마을’은 주민 스스로 쓰레기 배출 현황을 분석하고, 감량 실천계획을 수립하여 매달 결과를 공유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실천 프로그램은 단기 이벤트가 아닌 지속적 행동 변화 유도 구조를 갖춰야 하며, 참여 인센티브, 공동체 연계, 기록 기반 리포팅, 정책 연계 피드백 구조가 함께 설계될 때 실효성이 극대화된다.
셋째, 인프라 및 공간 기반 구축
제로 웨이스트 정책이 실현되려면 시민이 실천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과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단지 쓰레기를 줄이자는 메시지만으로는 도시의 구조를 바꿀 수 없다.
그래서 도시 전환에는 공공 기반의 제로 웨이스트 인프라가 핵심 역할을 한다.
서울시 성북구는 2020년 ‘성북구 재사용플라자’를 개관하여 자원순환과 제로 웨이스트 실천 공간을 마련했다. 이곳은 지역 내 주민이 의류·가전·잡화 등을 기증하고, 수리하거나 업사이클하여 다시 나눌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자원순환 체험과 교육이 가능한 공간도 함께 운영된다. 고양시의 ‘업사이클링 플라자(Go-UP)’는 2022년 개소 이후 시민 대상 환경 공예 프로그램, 업사이클 전시, 리사이클 제품 판매 마켓 등을 운영하며 자원순환 문화 확산의 거점이 되고 있다.
이외에도 수원시 자원순환센터, 인천 서구 자원순환 리빙랩, 전주시 재사용 물품 공유 플랫폼 등은 지역 맞춤형 공간 기반을 구축하여 지역 내 실천 허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들은 단순 체험 공간이 아닌, 일상 실천을 촉진하고 지속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하며, 교육·문화·서비스·행정이 통합된 모델로 진화해야 도시 전체로 확대될 수 있다.
넷째, 민간 기업 및 산업과의 파트너십
제로 웨이스트 도시 전환은 행정기관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완성될 수 없다.
도시의 경제 구조, 소비 구조, 유통 구조는 대부분 민간 기업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제로 웨이스트 정책이 민간 산업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않으면 구조적 전환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민간기업, 상점, 프랜차이즈, 유통 플랫폼 등이 제로 웨이스트의 정책 파트너로 기능해야 하며,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와 행정적 유인책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서울시의 다회용기 사용 확산을 위한 ‘배달 앱 협약 모델이 있다. 2022년 서울시는 민간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과 협약을 맺고, 일부 자치구에서 다회용기 선택 주문이 가능한 시범 사업을 운영했다. 사용자는 다회용기를 선택해 음식을 주문할 수 있고, 해당 음식점은 전용 세척 업체와 연계하여 위생 관리 및 회수를 진행하는 구조였다. 이 협약은 단순 행정이 아니라 플랫폼과 음식점, 세척기업, 시청이 동시에 협업하는 도시 기반 민간 파트너십 모델로 평가받았다.
또한 제주도는 2021년부터 ‘플라스틱 프리 제주’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내 카페, 음식점, 기념품 상점 등과 협약을 맺고 일회용 플라스틱 감축 목표를 설정했으며, 친환경 포장재 지원, 감축 실천 인증 마크 부여, 매장 홍보 등을 통해 민간 실천 유도를 강화했다. 이 사업은 한국관광공사, 제주시청, 환경부가 공동으로 참여한 민관 협력 구조로, 관광업과 환경정책을 결합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이 외에도 성남시는 지역 내 사회적기업과 연계하여 리필스테이션, 무포장 장보기 주간 운영, 제로 웨이스트 상점 인센티브 제공 등 다양한 민간 참여 기반 정책을 시행 중이다.
이러한 파트너십은 단지 협약 문서를 넘어서, 정기적 성과 공유, 참여 유도 인센티브, 행정 홍보 채널 제공, 소비자 행동변화 유도까지 함께 포함되어야 지속 가능하다.
다섯째, 예산 및 정책 성과관리 체계
아무리 완성도 높은 정책이라도 예산이 수반되지 않으면 도시의 실제 변화로 이어질 수 없다.
제로 웨이스트 도시 전환은 복합적인 인프라, 프로그램, 교육, 평가 구조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예산 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조례만 제정되고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사업이 중단되거나 유명무실해진 사례도 존재한다.
서울시는 2019년 ‘자원순환 도시 서울 추진계획’에 따라 매년 5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자원순환 정책에 편성하고 있다. 이 중 일부는 제로 웨이스트 실천사업, 다회용기 회수시스템, 시민 캠페인, 공공기관 실천 기반 구축 등에 사용되며, 매년 성과 분석을 통해 정책 방향을 조정한다. 특히 2022년부터는 ‘정책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기반 평가 시스템을 적용하여, 감량된 쓰레기량, 참여 시민 수, 프로그램 운영 횟수, 민간 협약 건수 등 정량적 수치를 기반으로 정책 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전주시도 ‘자원순환 도시 조성 조례’에 따라 매년 실행계획을 수립하며, 시의회 보고용 예산 실행 내역과 결과 리포트를 제출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수원시의 경우 ‘주민참여 예산제’를 통해 제로 웨이스트 관련 제안사업을 우선 검토 항목으로 지정하여, 시민 아이디어가 실제 예산 사업으로 반영되는 비율을 높이고 있다.
예산과 성과 관리는 정책의 신뢰도를 높이는 핵심 요소다.
단기 시범사업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5년 단위의 장기 예산 계획, 연간 평가 체계, 시민 공개용 리포트 발간, 성과 기반 예산 배분 시스템(PB: Performance-based Budgeting)이 필요하며,
행정 내부에도 전담 예산 담당 조직과 성과 분석 담당자가 필요하다.
선언이 아닌 구조로 지속 가능성을 만드는 도시
제로 웨이스트 도시로의 전환은 단지 환경을 위한 캠페인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의 구조를 재편하는 ‘시스템 혁신’이며, 행정, 시민, 산업, 예산, 인프라가 함께 작동하는 구조적 전환을 요구한다.
이 글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핵심 조건 조례 및 계획 수립, 시민 참여 구조, 공간 및 인프라, 민간 파트너십, 예산 및 평가 체계는 각각이 독립적으로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작동할 때 도시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한국의 많은 도시들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제로 웨이스트 실천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개별 사업 단위로 흩어져 있거나, 정책 연속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제는 각 도시가 자신만의 환경 조건, 산업 구조, 주민 특성을 분석하여 도시 맞춤형 제로 웨이스트 로드맵을 수립하고, 구조적 전략을 실행할 시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무엇보다도 시민의 참여가 정책 설계와 실행의 중심에 배치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앞으로 진정한 제로 웨이스트 도시는 쓰레기 없는 도시가 아니라,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도록 선택하고 설계된 도시가 되어야 한다. 그 도시는 기술이 아닌 제도와 문화로 유지되며, 선언이 아닌 구조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한다.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의 도시가 진정한 전환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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