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

제로 웨이스트 장례 문화와 지속 가능한 추모 방식

Zero-W 2025. 8. 12. 09:24

죽음 이후에도 남기는 환경 발자국

장례는 한 사람의 생을 마무리하는 의식이자,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추모의 시간이다. 그러나 아름답게 꾸며진 장례식장과 엄숙한 절차 뒤에는 우리가 쉽게 잊는 환경 부담이 숨어 있다. 매장 과정에서 벌목된 목재와 화학 방부 처리, 화장 시 사용되는 화석 연료와 대기 오염물질, 장례식장에서 사용되는 플라스틱 식기와 포장재, 그리고 버려지는 대규모 화환까지, 전통적인 장례 절차는 의외로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 연간 약 28만 건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28만 톤에 달한다. 이는 1년간 약 12만 대의 자동차가 배출하는 양과 비슷하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제로 웨이스트’라는 가치가 일상과 산업 전반에 확산되면서, 장례 문화도 그 범위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제로 웨이스트 장례는 생전의 친환경 실천을 삶의 마지막 단계까지 확장하는 개념으로, 쓰레기와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고 자연 순환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본문에서는 전통 장례의 환경적 문제를 분석하고, 국내외에서 실현되고 있는 제로 웨이스트 장례 사례와 제도, 그리고 이를 사회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흰색 관을 운구하며 장례식을 진행하는 모습, 관 위에는 흰색과 보라색 꽃 장식이 놓여 있음

전통 장례 문화의 환경 부담과 구조적 문제

전통적인 매장 방식은 숲과 토양, 지하수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관 제작에는 삼나무, 소나무, 참나무 등 고급 수종이 사용되며, 방부처리를 위해 포름알데히드, 메탄올 등의 화학물질이 투입된다. 이는 매장 후 토양과 지하수로 스며들어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 매장지 확보를 위해 산림을 훼손하고 시멘트 묘지 구조물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도 무시할 수 없다.

 

화장은 공간 부담을 줄이는 장점이 있지만, 한 번의 화장에 평균 160~200리터의 화석 연료가 소모되고, 이산화탄소, 질소산화물,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 일본 환경성 자료에 따르면, 화장으로 인한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일본 전체 배출량의 약 0.2%를 차지하며, 이는 전체 산업 부문 중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이다.

 

장례식장의 운영 또한 문제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3일 장례를 치를 때 평균 200kg 이상의 폐기물이 발생하며, 그중 절반 이상이 플라스틱과 비닐류다. 플라스틱 포장 화환은 사용 후 전량 폐기되며, 음식 제공 시 사용하는 일회용 용기와 PET병, 종이컵이 장례식이 끝난 뒤 쓰레기 더미로 남는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는 개인의 선택을 넘어 장례 산업 전반의 시스템 변화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다.

 

 

제로 웨이스트 장례의 형태와 국내외 실제 사례

해외 사례
미국과 캐나다, 호주, 유럽 일부 국가는 이미 제로 웨이스트 장례를 제도권에 포함시키고 있다. 미국 워싱턴주와 캘리포니아주는 ‘그린 버리얼(Green Burial)’을 합법화하여, 화학 방부 처리 없이 시신을 자연 분해 가능한 관이나 수의로 감싸고, 매장지에는 인공 구조물을 설치하지 않는다. 네덜란드에서는 버섯균사체(mycelium)로 만든 100% 분해 가능한 관이 상용화되었으며, 시신과 함께 토양 속에서 완전히 분해되어 2~3년 내에 생태계로 돌아간다. 호주 멜버른의 ‘리빙 메모리 포레스트(Living Memory Forest)’는 묘비 대신 나무를 심어 고인을 추모하며, 심어진 나무는 숲 생태계의 일부로 성장한다.

 

국내 사례
한국에서도 친환경 장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립하늘숲추모원, 국립산청호국원 등에서는 수목장을 운영하며, 기존의 묘지 대신 숲 속에서 자연과 함께 고인을 기리는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일부 장례식장은 다회용 식기를 도입해 연간 수 톤의 폐기물 감축 효과를 내고 있으며, 화환 대신 기부를 권장하는 ‘헌화 대신 후원’ 캠페인도 시행 중이다. 2023년 서울시의 자료에 따르면, 수목장 선택 비율은 2010년 2%에서 2022년 14%로 증가했다.

 

새로운 방식
최근에는 ‘아쿠아메이션(Aquamation, 수장법)’과 ‘자연장(Natural Burial)’이 주목받고 있다. 아쿠아메이션은 알칼리 가수분해를 통해 시신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화장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이 90% 이상 적다. 아직 한국에서는 허용되지 않았지만, 북미와 호주 일부 주에서는 합법화되었다.

 

 

지속 가능한 추모 방식과 사회적 수용성 확보

지속 가능한 장례 문화는 단순한 매장·화장 방식 전환을 넘어, 추모 과정에서도 환경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디지털 추모관은 물리적 추모 공간을 대체하여 유지·관리 비용과 환경 부담을 줄인다. 또한, 헌화용 꽃을 재활용 종이 꽃, 천 리스, 혹은 토종 식물 묘목으로 대체하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문화적·정서적 장벽도 크다. 전통적으로 장례는 성대한 절차와 시각적 표현이 성의를 나타내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일부 세대에서는 친환경 장례를 ‘간소화’나 ‘성의 부족’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따라서 제로 웨이스트 장례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종교계, 장례업계, 지자체, 환경단체 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교육·홍보 캠페인, 제도 개선, 세제 혜택 부여, 친환경 장례 서비스 표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법적 제도 개선 필요성
한국의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일부 자연장 방식을 허용하고 있으나, 아쿠아메이션이나 그린 버리얼 등은 제도권에 포함되지 않아 확산에 한계가 있다. 미국·유럽 사례처럼 친환경 장례를 법적으로 명시하고, 장례식장에서 친환경 선택지를 안내하는 의무를 부여하면 변화 속도는 빨라질 수 있다.

 

 

마지막 선택도 지구를 위한 유산이 되게

제로 웨이스트 장례 문화는 ‘죽음 이후에도 환경을 지키는 선택’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가치다. 이는 개인적 신념뿐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의 필수적인 문화 전환이기도 하다. 친환경 장례 방식은 토양·대기·수질 오염을 줄이고, 자연 순환을 복원하며, 남겨진 이들에게 지속 가능성의 메시지를 남긴다. 정부는 제도적 장벽을 낮추고, 장례 산업은 친환경 서비스 모델을 확대하며, 시민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구를 위한 선택을 실천하는 사회라면, 우리의 유산은 단지 무덤이나 기록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남겨지는 깨끗한 환경이 될 것이다.